헛된 죽음



사회를 염려하여 자기 몸을 괴롭히거나 목숨을 희생하는 행위를 서양말로 마터돔(martyrdom)이라고 한다. 잃는 것은 단지 한 사람의 생명이나 그에 의해 얻는 공덕은 전쟁에서 천만명의 생명을 빼앗고 수많은 재물을 헛되이 한 것보다 훨씬 크다고 할 것이다.

예로부터 일본에는 전사한 영웅도 많고 적과 장렬하게 맞서 싸운 용사도 적지 않다. 이들은 모두 충신, 의사(義士)라고 불리며 인기가 매우 높다. 그런 충신열사들에 대해 살펴보면 대개는 남북조황통(皇統) 쟁탈 전쟁의 쿠스노기 마사시게(楠本正成)나 주인의 복수를 달성하고 죽은 아코번의 낭인(赤穗浪士) 등이 있다. 그 행위는 언뜻 보아 대단히 화려하나 실제로 그들의 죽음이 세상에 별로 보탬이 된건 아니었다. 자신의 주인을 위해서라거나 죽은 주인에게 면목이 없어서라든지 하여 단지 목숨만 버리면 훌륭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미개한 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오늘날 문명의 정신으로 본다면 그들은 그저 목숨의 가치를 알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원래 문명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국민의 지식과 인격을 향상시켜 국민들이 자주독립의 정신으로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타인을 침해하지 않고 타인에게서도 침해당하지 않으며, 각각 자신의 권리를 누리고 책임을 다하여 사회전체의 행복과 번영을 가져오는 것을 말함이 아닌가? 그런데 혈통 다툼의 전쟁이나 주인을 위한 복수가 오늘날 문명의 정신에 과연 합당하겠는가?

주인의 체면을 지켜서 그만큼 사회의 문명이 진보하고 공업이 발전하여 튼튼한 경제가 뿌리를 내리고 국민 전반의 행복과 번영이 이루어진다는 생각이었는가? 그럴 목적이었고 그런 결과가 나온다면 전사도 좋고 복수도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나 그러한 결과가 나올리 없다. 또한 그 충신열사들에게 그럴 목적이 있었던 것도 아닐 것이다. 단지 주종관계로 주인에 대한 의리를 보이기 위해 죽음을 택한 것일 뿐이다.


- 학문의 권장 7-8 (福澤諭吉) -


덧글

  • 부라부스 2017/01/30 13:38 #

    읽는내내 ' 이글루스에서 마치 일본책 번역한글을 읽는거같은 이 기분은 뭐지? ' 란 생각을 했는데
    학문의 권장이란 책에서 발췌하신 내용이었군요.

    사실 효용성; 면에서 보면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 오히려 식민지화를 앞당겼다고 하는 주장도 있고 독립의식을 고취시켰단주장도 있고 .....

    비교형량으로 따져봐도 결국 뭐던간에

    아 ! 맞다. 타인을 해하는건 본문에 나오는 martyrdom의 범주에 속하지 않겠죠
  • 담배피는남자 2017/01/30 13:46 #

    식민지화를 앞당겼다는 주장: 일본제국이 정치가 한명으로 움지이는 국가도 아니고 이토를 대신할 자는 많았음. 대한제국 합병을 주장하는 정치가 뿐만 아니라 반대하는 정치가도 있었음.

    독립의식 고취: 는 개뿔. 을사조약이 고종의 뜻이 아니었다면서 왜 오적이 멀쩡히 살아있었는지 생각해보면...
  • 흑범 2017/01/30 13:59 #

    당시 대두되던 정한론... 조선을 정벌하자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 것은 사실입니다.

    정한론자들이, 자 봐라 조선은 저런 놈들이다... 이렇게 선동하기 충분한 빌미를 제공할수 있지 않을까요?
  • 담배피는남자 2017/01/30 14:06 #

    흑범 // 러일전쟁 후의 일본 경제사정 때문에 대한제국 합병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컸어요. 지리적 잇점 외엔 합병해봐야 일본이 돈 쓸일만 많지 당장 뽑아먹을게 없으니...
  • 담배피는남자 2017/01/30 14:09 #

    흑범 // 하지만 반도에 또다시 외국이 들어오는것보단 먼저 알박는게 안보적으로는 더 이득이라는 쪽에 힘이 기울어져 합병에 들어간거구요.

    결국 러일전쟁 자체가 이미 합병을 앞당기게 된 원인 중 하나임.
  • 범골의 염황 2017/01/31 01:55 #

    왜 고인께서는 박사모라면서 죽은 방식은 노시계 운지하던 걸 흉내냈을까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